불우라는 말로 생을 요약하기에는 늘 저녁이 길었다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니 목젖이 눌렸다
밤은 또 왔지만 눈이 가만가만 내려서 차갑게 따뜻했다
손바닥에 묻은 실밥 어둠을 겨우 뜯어낸 뒤 쌀을 씻으면 세상이 사무쳤다
노안이 오래 됐으나 멀리서 보는 게 익숙했으므로 당신을 떠올리지 않아도 견딜 만했다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똥말똥 밥물 끓어오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숟가락이 무거웠다
물그릇에 살얼음이 잡혔다
다시 잠 못 들고 뒤척이면 알전구의 필라멘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정 너머의 치렁치렁한 그림자를 불우라는 말로 싹둑 접기에는 언제나 생이 무례했다
강연호, 불우
Poetry202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