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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 끝에 무엇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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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103 Posts

오은, 계절감

Poetry
2024.03.15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이 흐르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김진경, 낙타

Poetry
2024.03.13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만나는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

아르튀르 랭보, 감각

Poetry
2024.03.06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 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몽상가, 나는 내 발에 그 차가움을 느끼게 하네. 바람은 나의 헐벗은 머리를 씻겨 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무한한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여인과 함께하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 김현 번역(민음사) 더보기 여름날 푸른 저녁에, 나는 오솔길로 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잔풀을 밟으러. 꿈꾸는 나는 그 서늘함을 발에 느끼리라. 바람이 내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나는 말하지 않으리라, 아무 생각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무한한 사랑이 내 영혼 속에 차오르리라, 그리고 나는 가리라 멀리, 아주 멀리, 어느 집시처럼, 자연 속으로, ─여자와 함께인 듯 행복하게.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Poetry
2024.03.05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세월은 지나간다 세월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가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 송재영 번역(민음사) 더보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Poetry
2024.02.26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서윤후, 금붕어불꽃*

Poetry
2024.02.23
*오오쓰카 아이의 노래 제목에서 빌려옴. 한겨울 기름매미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 사람에게 여름이란 계속 의심하는 흐름 늙은 맹금류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갈 때 생긴 풍경의 빗금 속에서 당신이 걸어나온다 흔들리는 청보리밭을 지나 서사를 잃은 골짜기를 지나 여름보다 먼저 오게 된 사람이다 턱을 괸 벼랑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만조의 얼굴을 하고선 얼룩에게 어울릴 만한 얼룩을 고른다 구슬땀이 이곳의 경치를 짐작하게 한다 한겨울 철갑을 둘렀던 나무가 여름 내내 그대로인 풍경 속에서 무엇이 무엇을 견디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사랑을 꿈꾸었던 여름에 변압기를 내리고는 오지 않았었지 여름은 말라버린 갈증이다 증거 없는 상실이다 멀리 있는 건 한달음에 올 수 있어서 가깝고 희미한 건 때가 되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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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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