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흰 여름의 포장마차

Poetry
2022.12.19

나에게는 집이 없어.
반짝이는 먼지와 햇빛 속의 창(槍)대가,
훨, 훨, 타오르는 포플린 모자.
작은 잎사귀 속의 그늘이
나의 집이야.
조약돌이 타오르는 흰 들판.
그 들판 속의 자주색 입술.

나에게는 방도 없고
테라스 가득한 만족도 없네.
식탁가의 귀여운 아이들.
아이들의 목마는 오직 강으로 가고
나는 촛불이 탈 만큼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이 부를 노래를 지었지.
내 마차의 푸른 속력 속에서
흐날리는 머리카락.
머리카락으로
서투른 음악을 켜며.

하루의 들판을 무섭게 달리는 나의 마차는
시간보다도 더욱 빠르고 강하여
나는 밤이 오기 전에
생각의 천막들을 다 걷어버렸네.

그리고 또한 나의 몇 형제들은
동화의 무덤 곁에 집을 지었으나
오. 나는 그들을 경멸했지.
그럼으로써 낯선 풍경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는 꿈이 없어.
해가 다 죽어버린 밤 속의 밤이
별이 다 죽어버린 밤 속의 정오가
그리고 여름이 다 죽어버린
국화 속의 가을이
나의 꿈이야.
콜탈이 눈물처럼 젖어 있는 가을들판.
그 들판 속의 포장마차의 황혼.